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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심리학의 방법론적 본질 - 과학과 지식획득의 기타 방법들의 비교

by 아구v 2022. 7. 19.

과학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지식을 획득하는 다른 방법들과 과학을 비교하는 것이다. 이하의 논의는 과학이 지식을 획득하는 다른 방법들로부터 빌려 왔으며 핵심 특징들을 공통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제시한다.

과학과 이른바 전통적으로 상식이라고 불리어 온 것은 배우 비슷하다. 상식이 사람들에 의해서 일상적 경험을 실제로 취급하기 위해서 사용된 상호 연결된 일련의 개념들인 고로, 과학은 상식의 하나의 논리적이며 통제된 확장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상식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어떤 이론이 느슨하고도 비체계적인 양식으로 적용한다. 즉, 상식에서의 이론들은 예언의 정확성이나 내적 일관성을 체계적으로 검증받지 않은 것들이다.

상식적 의론의 한 예는 "만일 내가 철수를 훈육한다면, 그의 행동은 변화될 것이다"일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과학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이론을 새로 만들며 이것을 검증하지 않은 채로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오히려 과학자는 사실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론들을 발전시키고, 이들 이론의 내적이거나 논리적 이 관성을 검증하며, 그다음에 이것들을 경험적으로 검증한다. 항상 옳은 이론이란 없지만 이론은 더 나은 이론이 그 이론을 대치시킬 때까지 계속 사용되게 된다. 하나의 훌륭한 예는 우리의 지식이 1980년 가을에 미국의 보이저 우주선이 발사된 이후에 바뀐 것이다. 보이저 우주선이 지구를 떠날 당시에 단지 6개의 토성 둘레의 고리들이 알려져 있었다. 보이저 우주선이 토성을 통고했을 때, 그 숫자는 약 1000개로 증가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토성 주위에 있다고 알려진 달들의 숫자도 3개에서 15개로 증가하게 되었다.

더욱이, 과학자들은 자기들의 이론에 대한 선택적으로 지지를 기를 쓰면서 찾고자 시도한다. 과학은 상식의 한 확장인 적극적이고도 자기 교정적이며, 자유 해답씩의 문제 해결 과정이며, 통제된 공적 관찰과 평가에 관계하고 있다. 비록 이론들이 이 두 가지의 모든 체계 속에서 검증되고 있을지라도, 상식적 접근은 흔히 예외들을 무시한다. 이와는 달리 과학적 접근은 모든 자료를 주의 깊게 검토한다. 예컨대, 1920년대까지 미국의 대다수의 초등학교들은 아동들을 상급 학년으로 진급시키는 데 대해 엄격한 기준들을 사용했다. 만일 어떤 학생이 사전에 결정된 성취 수준에 미달하면, 그 학생은 그 수준의 성적에 이를 때까지 낙제하게 되었다. 교사의 성공은 진급에 요구되는 성적 수준을 보인 학생들의 숫자에 의해서 주로 판단되었다.

이러한 진급 시책은 만일 어떤 학생이 어떤 학년의 교육과정의 내용들을 배우는 데에 실패한다면, 그 학생은 그 내용이 숙지 되게 될 때까지 그 학년을 재수해야만 된다는 상식에 기초하여 있었다. 미국에서 성취 중심의 진급 시책은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에 과학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이들 연구는 보통의 낙제생이 처음으로 그 학년에 진급한 학생들보다도 더 많이 학습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냈다. 실제로, 잠재적인 낙제생 아동들에게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도록 허용했을 때, 그들은 진급하지 못했던 동등한 능력의 학생들보다 더 많은 학습을 보였다. 이와 같은 연구 발견들은 많은 학교들에 엄격한 진급 시책들을 포기하고서 보다 더 융통성 있는 학생 성장 중심의 진급 시책들을 택하게끔 자극했다.

과학은 또한 형이상학과 비교될 수 있다. 이 둘 사이의 주요 차이는 이 둘이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에 있다. 형이상학적 설명은 검증될 수 없다. 형이상 하적 설명의 한 예는 사회주의가 더 공평하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더 우수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공평한지는 과학자가 행할 수 없는 하나의 가치판단이다. 이와는 반대로, 과학적 설명은 공적으로 관찰되고 공적으로 검증될 수 있다. 앞의 예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큰 국민 총생산이나 더 많은 과학적 발견을 내놓았는지를 조사할 수 있다.

과학은 지식을 획득하는 한 수단으로써의 관찰을 거부하고 있는 극단적 이성주의를 배격한다. 그런데도, 과학자는 하나의 이성주의 자이다. 실제로, 이성주의와 결합한 경험주의(관찰에 대한 연구와 분석만이 지식을 낳을 수 있다는 하나의 철학적 신념)가 과학의 토대라고 흔히 주장되고 있다. 이들 두 체계는 과학의 기본 요소들 즉, 관찰 추론 및 분석을 포함하고 있다. 비록 우리 사회가 지금은 권위자를 다소 경시할지라도, 우리는 권위자들로부터 지식을 획득함이 없이는 진보하거나 심지어 생존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우리는 권위자에게서 나오는 다량의 사실들과 정보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지식의 양은 너무 신속하게 증가하여 와서 누구나 간에 모든 분야에서 유능하게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우리가 과학적 방법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바뀌지는 않는다. 만일 우리가 지식의 한 원천으로서 권위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우리는 과학자들이 알아내 온 것들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과학자들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획득된 지식을 사용할 수가 없다면, 아무런 진보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아무런 새로운 지식이 획득될 수 없다.

만일 이전의 과학자들의 지식을 사용할 수 없다면, 모든 새로운 과학자들은 다른 과학자들이 이전에 이미 해 놓았던 모든 연구를 쓸데없이 반복해야만 될 것이다.

지식의 전적인 원천으로서의 권위자와 지식의 한 원천으로서의 권위자 사이의 차이는 단순하지만 중요하다.

권위자가 지식의 유일한 원천일 때, 그와 모순되는 증거가 대개 거부당하게 되기 때문에 진보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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